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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Part 1. Telling the Story(2)

by 쿠키푸 202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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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캐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3. 이야기: 완전한 줄거리

우리는 화면 전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화면 전개란 미완성된 문장과 같다. 것은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의 이야기는 많은 장면들로 이루어진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사건 진행을 보여준다. 사건의 진행이란 이야기의 줄거리이다. 도입 부분에서는 어떤 목적이나 문제가 제시된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성취해야 할 목적이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야 완성된다. 만족할만한 아동 도서에서는 완전한 줄거리가 있어야 한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자.

 

헤이, 디들, 디들,
고양이와

 

이 문장은 완전하기 않기 때문에 실망스럽다. 운율이 맞는 대구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이, 디들, 다들,
고양이와 바이올린

 

이와 마찬가지로 줄거리에서 어떤 부분이 빠져있으면 줄거리는 불완전하다. 가장 기초적인 형태만을 보자면 완전한 이야기는 일련의 사각형 점들로 도식화할 수 있다. 점이 하나 찍혀있는 종이 다음 점이 둘이 있는 종이와 점이 세 개 찍혀있는 종이를 보여주면 우리는 그 그림을 '읽을' 때 일정한 규칙성을 발견한다. 하지만 점이 하나, , 다섯, 하나 이런 순서의 그림을 읽을 경우 우리는 불안감을 느낀다. 마치 약속을 했는데 그것이 지켜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예측이 되는 규칙 속에서 더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1) 목적의 달성

일반적으로 볼 때, 모든 줄거리에는 명시되거나 암시되거나 간에 목적이 있다. 줄거리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목적이 성취되어야 한다. 연속된 그림 속에서 미끄럼틀을 올라가는 배우의 그림을 봤을 때 우리는 배우의 목적이 미끄럼틀에서 재미있게 노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만약 마지막 그림에서 배우가 미끄럼틀에서 떨어지는 장면으로 마무리 짓는다면 이 줄거리는 불안정하고 목적은 성취되지 않는 채 끝나게 된다. 이와 반대로 미끄럼틀을 멋지게 타고 착지하는 그림을 연속적인 그림으로 보게 되면 우리는 배우가 하고자 하는 목적을 성공적으로 성취했기 때문에 줄거리가 완전해진다고 느껴진다.

보니 비숍의 '심술궂은 자전거'에는 결코 끝이 없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끝없이 움직이기만 할 뿐 목적지에는 도착하지 못한다. 결말이 없는 줄거리는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는 일련의 움직임일 뿐으로 불완전한 채 남아있게 된다. '심술궂은 자전거'는'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끊임없이 언덕으로 바위를 굴려 올리지만 그것이 돼 굴러오는 것을 보아야 하는 시지프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시지프보다는 재미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아동 도서에는 확실한 결말이 필요하다.

유리 슐레비츠의 어느 월요일 아침'에 영감을 준 프랑스 노래에도 끝없는 반복 부분이 있다. 그 노래는 끊임없이 부를 수 있다. 왕과 여왕과 어린 왕자가 어린 소년을 만나기 위해 매일매일 돌아온다. 하지만 매번 소년은 집에 없다. 이 노래를 잠시 부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이것을 이야기로 읽는 것은 대단히 따분하고 매우 짜증스러울 것이다. 유리 슐레비츠의 책에서는 매일 새로운 등장인물이 행진에 결합한다. 그리고 마침내 일요일에 왕과 여왕과 어린 왕자가 집에 있는 소년을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완성된다.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결말 지음으로써 왕과 여왕과 어린 왕자와 독자에게 만족감을 주고, 그들의 반복된 방문을 정당화할 수 있다.

 

2) 완전한 줄거리에서 이야기로

훌륭한 어린이 책을 위해서는 완전한 줄거리가 있어야 하지만, 또한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식사라는 제목의 완벽한 줄거리를 만들어 본다고 가정해보자. 배우는 시내의 식당에서 음식을 먹기 위해 차를 몰고 나간다. 짧은 드라이브 끝에 그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음식을 즐긴다. 그는 목적한 바를 성취했다. 하지만 줄거리가 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 남자, , , 그리고 음식은 추상적인 단어들이다. 하지만 특정한 남자, 특정한 집, 특정한 차, 특정한 음식은 현실감이 있다. 독특한 '어떤 사람만이 독자에게 감정적인 반응을 촉발할 수 있다. D. 맥도널드는 이야기란 당신이 관심을 가지는 인물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잘것없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야기란 특별한 사건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그림에는 독자의 흥미를 끌만한 충분하고도 함축적인 정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풍이라는 단순한 형태의 이야기를 쓴다고 했을 경우, 여러 요소를 그 안에 담음으로써 우리는 완전한 줄거리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왜 '소풍'은 이야기이고 '식사' '식사'는 이야기가 아닌가? '식사'는 주로 드라이브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으며, 어떤 이야기의 아이디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소풍'은 독특하고 구체적이다. '소풍' 에는 세부 사항에 대한 묘사가 있다. 배우의 외모, 의상, 도시락 바구니, 바퀴 달린 배, 길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 등등. 배우의 내적인 본성, 결단력과 이를 이루기 위한 힘겨운 노력 또한 약간 감지할 수 있다.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는 것이며, 배를 밀어 올리는 것이며, 이마의 땀을 훔치는 남자의 모습, 도망가는 배, 그것을 따라잡으려는 남자의 모습 등 배우의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세부 묘사도 있다. 이러한 세부 사항들을 통해 독자에게 생생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는 것이다. 세부사항은 이야기를 독특하고 현실감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좋은 이야기에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소풍'의 줄거리는 비록 매우 단순하게 보이지만 일상을 무대로 하면서도 의외성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배우는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개성적인 존재로, 독자들은 그가 목적을 달성하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독자들이 배우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를 좋아할 때만이 독자는 이야기의 결말에 흥미를 보인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야기의 결말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줄거리가 불필요하고 짜증스럽기까지 한 것이 되고 만다. '소풍'의 줄거리가 완전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배우가 소풍 장소에 도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신이 원하던 바를 성취했기 때문이다. 독자는 배우가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서 원하던 바를 성취해야만 줄거리가 완성되었다고 느낀다.

완전한 줄거리를 위해서는 문제의 해결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빌헬름 부시의 '벼룩' '벼룩'에서 배우는 벼룩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문제가 해결되기만 하면 그는 잠을 잘 수 있다. '벼룩'은 세부묘사를 통해 줄거리에 현실감을 주고, 배우를 개성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우리가 배우의 문제 - 편안하게 밤잠을 자고자 하는 욕구 - 에 공감하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는 줄거리가 완성되었다고 느낀다. 이야기의 줄거리에는 대체로 물리적인 행동이 포함되기 마련이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벼룩'의 진정한 줄거리는 배우의 목적과 그것의 성취에 있다. 이 장의 후반부에서 우리는 이야기가 취할 수 있는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줄거리를 살펴보게 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완전한 줄거리의 규칙을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완전한 줄거리는 도입부에서 다음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질문하거나 암시한다.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목적을 달성하거나 해결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결말에 의해 충분히 해답이 주어져야 한다. 결말 부분의 해답은 도입 부분의 질문을 만족시켜야 한다. 결말 부분은 도입 부분의 직접적인 결과물이어야 하며 대체물은 아무 소용이 없다. 망가진 장난감을 고치고자 하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해보자. 소년은 장난감을 고치기 시작하지만, 잠자리에 들 시간에 되어하던 일을 멈춘다. 소년은 비슷하게 생긴 망가진 장난감을 고쳐서 그것을 가지고 노는 꿈을 꾼다. 소년이 졸려서 잠자리에 드는 것을 꿈은 끝난다. 이것으로 이야기도 끝난다. 소년이 그러한 꿈을 꾸도록 촉발한 현실의 망가진 장난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꿈속에서 망가진 장난감을 고치는 것은 진짜 장난감을 고치는 것을 대체할 수 없다. 이러한 식의 결말은 도입 부분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장난감을 고치고자 하는 소년의 열망을 무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에 소년이 꿈속에서 장난감을 고치는 방법을 배우고, 잠에서 깨어 장난감을 고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면 이야기는 더욱 완전하고 풍부해졌을 것이다.

어떤 작가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완전한 줄거리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책이나 영화의 이야기들은 단순한 장면의 연속이나 완전한 줄거리 인체 하는 확장된 장면들뿐이다. 하지만 작가들은 그 차이를 대로 알지 못한다. 성인 도서에서는 결말 부분에서 줄거리의 완성을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지만, 훌륭한 아동 도서가 되기 위해서는 충분하고도 명백하게 완성된 줄거리가 제시되어야 한다. 성인들은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도 마음속으로 줄거리를 해석할 수 있지만, 어린아이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작가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줄거리를 완성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대체로 아이들은 이야기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거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바꾸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줄거리는 마치 세상이 균형을 잃은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 이렇게 불안감은 줄거리가 완성됨으로써 균형을 갖추게 되며, 그 후에야 생활도 평화를 찾는다. 이야기에서 소개된 목적이 불완전하게 성취되거나, 제기된 질문에 대해 완전한 해답이 주어지지 않거나, 문제가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어린 독자들은 줄거리가 불완전하다고 여기며, 미련을 갖거나 좌절하게 되고 충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야기의 긴장감은 결말 부분에서 완전하게 해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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