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이야기 전개
완전한 줄거리는 목적을 제시하고 그것을 전개시킨다. 세부사항이 드러나고 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의 전개는 이야기의 목적만큼이나 중요하다. 이야기란 사실상 사건 전개의 과정이다. ‘마술’에서 여러분은 한 프레임에서 다음 프레임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보게 된다. 각각의 프레임이 비록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부분적인 정보만을 보여주고 있으며 마지막 프레임에 이르러서야 전체 화면은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설명한다. 이 장면들은 마치 두루마리 그림을 천천히 펼쳐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각각의 부분들이 모여 하나의 완전한 단위를 구축한다. 만약 그 이전 단계 없이 마지막 프레임만 제시된다면 독자는 어떤 호기심이나 긴장감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마술' 이 장면들을 펼쳐 보이고는 있지만 이야기는 아니다. 이야기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어나는 사건의 과정이다. ‘마술'에서는 마술' 시간 요소가 독자의 마음에는 있을지언정 줄거리 자체에는 없는 사건의 과정이다. 화면 정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정지 화면도 그 전개 방법에 따라 우리의 주의를 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어떤 이야기들은 전개 과정에 중점을 두어 줄거리는 대단히 단순한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는 만족스럽다. M. B. 고프 스타인의 '소피의 소풍' 에는 풀어야 할 문제나 해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 없다. 독자들이 읽기를 계속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긴장감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긴장감은 주로 도입에서 결말에 이르는 사이에 단계적으로 사건을 전개함으로써 성취된 것이다. 이야기는 만족스럽고, 줄거리도 완전하며, 소피가 소풍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을 잘 전달한다.
'마술' 이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한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면, '소피의 소풍'은 세부 사항을 갖춘 이야기이다. 이 두 작품의 차이점은 '소피의 소풍' 이 언어로 써졌다는 데 있지 않다. 이 이야기는 그림으로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이점은 전개 과정의 복잡성에 있다. 소피의 캐릭터와 신중하고 개성적인 모습을, 소피가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를 통해 신중하게 선택된 세부 묘사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소피의 소풍'을 읽으며 꼼꼼한 사전 준비와 소풍의 전개 과정, 그리고 소피의 캐릭터 때문에 즐거움을 느낀다. 작가는 소피의 성격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지만, 이것은 소피의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마술'은 정지 화면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전개 방식이 한정되어 있다. 이와는 달리 ‘소피의 소풍’ 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 '소피의 소풍'의' 시간 요소는 독자가 느낌에 좌우되지 않는다. 독자가 아닌 배우에 의해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도 제시간에 일어난다. '마술'은 화면 전개가 아니라 한 장의 그림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운명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 '마술'의 그림은 정지되어 있으며, 단지 그것을 보는 독자의 움직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소피는 살아 있으며, 의외의 일을 한다. '마술'의 프레임들은 그 자체로는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며, 마지막에 나오는 완전한 그림을 발견할 때에야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소피의 소풍'의' 경우, 그 클라이맥스는 소풍 자체에 있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도 많은 즐거움을 준다.
4) 통일감을 주는 연결 고리 만들기
이야기 전개 과정에는 통일감을 주는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 '마술'에서 통일감을 주는 연결 고리는 동일한 한 장의 그림이 펼쳐진다는 데 있다. '소피의 소풍'의 경우 통일감을 주는 연결고리는 소피이다. 독자가 이야기가 전개되는 매 단계를 따라가는 것은 소피의 행동을 통해서이다. 많은 사건이 일어나는 이야기나 많은 그림들로 이루어진 줄거리에서 통일감을 주는 연결 고리가 필요한 까닭은 무엇인가? 우리는 줄거리나 주제가 도입부터 결말까지 일관되게 진행될 때 흥미를 느낀다. 반면 서로 연관성이 없는 사건들이나 통일감이 결여된 인물들이 줄지어 나타날 경우에는 흥미를 잃는다. 오르테가 이 가세의 추론을 이용하여 설명하자면, 통일감을 주는 연결 고리란 구슬들을 꿰어서 목걸이로 만들어내는 줄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사과 파이의 비극적인 죽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글자 A-사과 파이-는 알파벳 순서에서 뒤따라 나오는 다른 글자들에 의해 온갖 일을 당한다.(B는 그것을 먹어라. C는 그것을 잘라라. D는 그것을 나누어라.) 마릴리 로빈 버튼의 '아론이 일어나서' 에도 비슷한 방식의 알파벳 말놀이가 소개된다.(아론이 일어나, 거품으로 목욕을 하고, 곱슬머리를 빗고, 그날을 위해 옷을 입었다.) 두 경우 모두 통일감을 주는 연결 고리 - 사과 파이나 아론이라는 소년 - 가 있어서 그것을 통해 줄거리가 풀려 나오고, 따로 떨어진 요소들을 결합시키며,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내적 연관성이 없는 임의의 단어들을 연결하여 만든 알파벳 책(A는 사과, B는 곰, C는 카펫, D는 문)은 이러한 재미를 유발할 수 없다.
'중국인 오 형제' (오 형제에게 일어난 일을 다룬 옛이야기)) 같은 누적적인 이야기나 '어느 월요일 아침' (왕과 여왕과 어린 왕자의 반복적인 방문이 있는) 같은 이야기에서도 통일감을 주는 연결 고리는 중요하다. 우리가 이야기책을 전화번호부나 창고 재고 목록보다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통일감을 주는 연결 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에는 일관성이 있다. 이야기는 동일한 물건이나 등장인물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가를 이야기한다.
에릭 칼의 '배고픈 애벌레'에서 통일감을 주는 연결 고리는 바로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내내 먹어대는 작은 애벌레이다. 월요일에 애벌레는 사과 한 개를 먹고 화요일에는 배 두 개를 먹고, 수요일에는 자두 세 개를 먹고, 목요일에는 딸기 네 개를 먹는다 등등. 여러 가지 과일들에 구멍을 내어 먹어대는 애벌레는 구슬을 꿰어 목걸이를 만드는 줄과도 같은 존재이다. 통일감을 주는 연결 고리가 없었다면 누적적인 형태를 갖춘 이 이야기는 따분한 수 세기 책이 되었을 것이다. 애벌레의 행동 -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굶주린 듯 먹어치우는 것 - 이 많은 사건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내고 있다.
5) 독자의 흥미를 유지하기
성공적인 이야기라면 이야기 진행 과정 내내 독자를 열중하게 해야 하며,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관심을 갖게 해야 하고, 적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을 느끼게 해야 한다. 독자가 이야기에 푹 빠져들면, 모든 장면이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훌륭한 이야기를 검증하는 방법은 현재의 시점에서 그 이야기가 전개 과정 내내 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매력이 있는가에 있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마술' 에서처럼 가장 단순한 형태의 경우 독자가 미지의 것을 발견하기를 원하고, 그림의 전체를 보고 자하며,, 또는 이야기의 처음을 본 까닭에 완전한 줄거리를 알고자 한다는 것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독자가 이야기를 계속 읽게 만들기 위해서는 미지의 사실을 배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도입 부분에서부터 독자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독자의 흥미를 유지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불확실하거나 긴장감을 주는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다. 줄거리 전개 과정에서 이용되는 화면이나 장면 전환을 이용함으로써 긴장감을 높일 수 있다. '식사'의 식사' 다음 장면을 상상해 보자. 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는 첫 번째 프레임은 남자가 식당을 나와서 차를 타러 가는 것이다. 다음 프레임에서는 차가 도로를 달리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각 장면마다 남자의 눈앞에 펼쳐지는 길을 보면서 우리는 다음 장면을 예상할 수 있다. 곧게 난 길에서는 남자는 먼 거리까지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우리는 드라이브가 평탄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리는 남자가 그런 식으로 한동안 계속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뒤에서는 장면이 바뀐다. 밤이 되었고, 남자는 자동차 라이트가 비치는 가까운 곳만 볼 수 있다. 이 장면에 대한 시간적 기대도 짧아진다. 배우처럼, 우리도 앞길을 멀리까지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드라이브는 대낮의 드라이브보다 더 불확실한 느낌을 준다. 뒷부분에서는 장면 전환이 이루어지고 위험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예상치 못한 굽이가 있는 길을 밤에 운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의 시야는 더욱 협소해진다. 남자는 더욱 신중하게 도로를 살펴야 하고, 우리의 긴장감도 높아진다. 이제 이 화면 전개는 매우 불확실해진다. 우리는 운전을 하는 남자의 안전을 걱정하게 되고, 다음에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해진다. 우리는 위의 각 장면들이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로 결합하여 기능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이야기 - 식사 후에-에서 남자는 식당을 나와서 집을 향해 차를 몰아간다. 돌아가는 도중에 남자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차를 몰아 올라간다. 하늘은 어두워졌다.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불안한 드라이브를 마치고, 마침내 남자는 안전하게 집으로 도착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읽는다.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고자 하는 독자의 욕구는 상당 부분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가에 달려있다. '식사 후에'에서 독자는 배우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배우가 식당을 떠나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경험을 공유한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이와 같은 긴장감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소피의 소풍'에서는' 거론할 만한 '불확실성'이라는 게 아예 없다. 독자가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 빠져들고 구체적인 세부사항들을 즐기는 과정에서 차츰차츰 완벽한 줄거리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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